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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링크로스 84번가 헬레인 한프

     

     

    어느 날 우연히 넷플릭스 추천으로 “84번가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소개와 안소니 홉킨스의 오래전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선택했던 영화다. 1970년에 출간된 헬레인 한프의 회고록인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영화화한 작품이었고, “연인이라는 타이틀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책을 사이에 두고 런던의 중고서점의 직원과 뉴욕의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 간에 오간 책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에둘러 짐작하면서 제목에 대한 시비는 접어 두기로 했다.

     

     

    채링크로스 84번가와 만나다. 

    그 영화를 본 이후 다시 책을 찾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이후 영화의 원작 도서를 찾아보면 대부분 영화에 대한 실망으로 다가온다.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표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흥행성을 위해 억지스러운 각색이 가미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책을 먼저 본 다음 영화를 보는 편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이미 책에서 모든 내용을 이해한 상황이므로 영화에서 실망할 수 있지만 좀 더 관대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입장일 뿐이며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헬레인 한프는 채링크로스 84번지 마크스 서점의 프랭크 도엘과 책으로 연결되어 20여 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점의 모든 직원들과 도엘의 가족까지 이어지는 우정을 나누었다.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였던 헬레인에게 런던은 늘 꿈에 그리는 도시였고 런던 여행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그때마다 건강과 경제적 문제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런던으로의 여행이 좌절되고 만다. 그렇게 2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발간한 책이 채링크로스 84번지였다. 이 책은 영화, TV드라마,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드디어 런던, 멋진 일 말고는 달리 아무 일도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드디어 런던에 온 헬레인 한프가 런던에 머무는 동안 쓴 여행 일기이다. 헬레인 한프는 런던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런던에 대한 사랑을 담아 1970년에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출간했고, 1971년에 이 책의 판권을 사간 런던의 출판사가 출판 홍보 행사에 맞추어 그녀를 초청한 덕분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마크스서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프랑크 도엘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였다.

     

    헬레인은 남들이 책50권을 읽을 때 한권을 50번씩 읽는 애서가였다고 한다. 뉴욕의 고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는 책이었음에도 런던에 대한 로망과 그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물려받은 책을 사랑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런던에서 드디어 마크스서점(비록 이미 문을 닫았지만)을 방문했고 오랜 친구였던 프랑크 도엘의 가족들을 만났고 자신의 책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과 만났고 그 시간들을 일기로 다시 기록했다.

     

     

    헬레인이 살았던 뉴욕의 아파트(뉴욕 72번가 301 E.)에는 그녀의 책 채링크로스 84번가를 기념하기 위한 동판을 붙여 놓았다고 하다. 런던 채링크로스 84번가의 옛 마크스 서점이 있던 터에도 둥근 명판이 남아 있다고 하니 뉴욕과 런던을 여행할 때 이곳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새로운 여행 포인트를 입력해 놓았다.

     

     

    서점에 대한 단상

    헬렌네 한프의 책은 단순히 그녀와 마크스서점 직원들 간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책과 서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녀가 1997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그것도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근 독립출판이나 독립서적에 대한 관심과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내게 서점은 늘 편안한 안식처이다. 어릴 적 자주 가던 허름한 중고서점들은 이제 세월의 뒤안길로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최근 많이 생긴 새로운 트렌드의 중고서점이 집 가까이에 있다. 무료한 주말이면 그곳을 찾아 책도 읽고 몇 권을 사서 들고 오기도 한다. 가끔은 이미 읽은 책이 중고서적으로 나와 있는지도 찾아본다.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그중에서 소장하고 싶은 책을 기록해 놓았다가 중고서점에서 골라 내 책장에 옮겨다 놓는다. 그렇게 찾은 책을 들고 돌아올 때마다 너무 뿌듯하고 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작지만 큰 기쁨이다. 책은 우리를 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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