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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반할 지도

     

    이 책의 저자 정대영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박물관 큐레이터이자 지리학박사이다. 사실 지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아는 고지도라고 해봐야 역사시간에 배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유일한 정도인데 우리 역사에서 지도 이야기를 따로 엮어 만든 책이라니 궁금증이 일었다. 또한 다양한 지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지도를 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지도로 보는 역사 속 ‘사연’까지, 지도에 문외한이 나에게도 재미있게 다가온 책이다. 

     

     

    책의 제본에 먼저 반할지도

    책을 펼쳤을 때 책 양쪽이 활짝 젖혀져서 제본이 잘못된 건가 싶어 깜짝 놀랐다. 가끔 그렇게 낱장으로 흩어지는 책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로 책장의 접히는 한가운데를 묶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이렇게 묶인 여러 묶음들에 앞뒤로 표지를 붙여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제본한 방식이다. 고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서 같은 방식으로 색다르게 제작된 제본방식에 먼저 반하여 신기하게 살펴보게 된다.

     

    이야기가 있는 고지도에 반할지도

    1890년 주한프랑스공사관에 근무하게 된 모리스 쿠랑은 한국 고서들을 연구하여 한국 고서 해제집이자 한국에 관한 연구서인 한국서지를 완성한다. 이때 그 책에 수록된 대다수의 고서들이 프랑스로 옮겨지게 되었고 책자형태의 지도첩인 천하제국도(천하도)’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지도에는 조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도에는 조선, 일본, 중국, 유구(오키나와)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목국(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국, 소인국 등 상상의 나라들로 채워져 있다. 연구결과 이 지도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서양의 세계지도를 보수적으로 바라보았던 지식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고지도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성종 때 만들어진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의 부록으로 만들어진 동람도인데 한반도를 둥글넓적하게 그리고 있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추고 있었.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완산부지도는 조선 왕실의 본향이자 전라 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부 일대를 10폭의 병풍식으로 제작한 지도이다. 150년전 전주 일대의 자연지형, 주요 건물의 위치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이 지도는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조선의 슬픈 역사 가운데 특히 단종과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다. 노산군으로 폐위되었던 단종의 지위가 숙종 때 복권되고 영조 때부터 유배지 영월에 남아있는 단종의 자취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정조 때 여러 기록화를 남겼다. 이 그림들을 묶은 그림지도첩이 월중도이다. 작가는 월중도에 담긴 8장의 그림지도를 보고 있자면 당시의 슬픈 이야기와 오래된 사람들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여행용 포켓지도라고 할만한 수진일용방도 소개되어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은 아코디언식으로 접혀있는 지도로 조선시대 하위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도이다.

     

    지도를 만든 사람들에 반할지도

    대를 이어 지도를 만든 가문이 있다. 하동정씨 4대에 걸쳐 지도를 제작했던 정상기, 정항령, 정원림, 정수영이다. 이들의 노력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탄생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가 이들의 동국대지도에 대해 극찬을 하였다고 실려 있다

     

    조선의 북방 지역의 상세한 지도를 만들게 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를 정복한 청나라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부터이다. 1700년대 지도학자 정상기에 의해 제작된 동국지도백리척이라는 지도 제작방식을 사용하였는데 똑같은 축척을 기준 삼아 전국을 8장의 지도로 그려냈. 이로써 정상기는 축적이 표시된 최초의 지도제작자가 되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이전 청구도라는 지도를 제작했는데 그 서문에 조선의 가장 뛰어난 지도 제작자로 언급한 정철조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정철조라는 인물이 김정호의 위대한 유산인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철조 형제가 만든 지도인 해주신본에 대한 기록들이 규장각에 소장된 팔도지도이고 여기에 정철조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황윤석의 호 이재가 적혀있다. 정철조와 황윤석의 우정이 빛을 발하여 22백 년간 잊혀졌던 사람의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렇듯 지도를 제작한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와 함께 고지도를 통해 역사 속의 다양한 사연들과 함께 읽을 수 있다. 

     

    문명의 기억을 지키는 노력에 반할지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지도를 제작해 온 위대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역사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이 든다. 그 옛날, 걸어서 직접 보고 손으로 직접 그리면서 지도를 제작한 그 노력은 누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가진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문명의 기억을 증거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시대는 인공위성이 쏘아주는 수많은 정보에 의해 너무나도 편리하게 변화하고 있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한 길 찾기로 인해 지도를 보는 방법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위대한 선조들의 발자취만큼은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오늘 고지도와 그 지도를 만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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