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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책 수선가가 되다.

    어린 시절에 정말 좋아했던 책, 그리운 누군가와의 추억이 서린 책,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거나 물려받은 책. 그런 책들은 몇 번을 이사 다니면서도 절대 못버린다. 그러다 망가지거나 헤지면 책장이나 소중한 추억의 물건을 모아두는 박스안에 고이 모셔두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망가진 책을 수선하는 가게가 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루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저자가 2014년부터 책 수선을 배워 지금은 책 수선 전문가가 되었고 그 일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선해서 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이 한권씩 떠올랐으면, 어린아이들이 책 수선가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저자는 책을 수선하는 일은 단순히 찢긴 부분에 풀칠을 해서 덧붙이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뜯어진 섬유질의 결을 하나하나 풀어서 다시 이어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종이가 있고, 어떤 경우엔 접착제가 묻은 붓질 한 번에도 조각이 나서 쓸려나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종이도 있다. 사용하는 보강제 역시 재질과 색깔, 두께 등을 모두 감안해서 선택해야 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아주 예민한 작업이란다. 그러나 저자는 그 오랜 시간을 책과 주인이 함께 해온 시간과 사랑 안에서 책 수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2014년 미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했을 때 처음 '책 수선'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공으로 북아트와 제지(Papermaking)분야를 선택했는데 그래픽 디자이너로 스크린 상에서 편집 디자인을 해 보긴 했지만 새로운 전공에서는 숙련해야 할 기본적인 장비와 재료들, 그리고 손기술이 너무 많았다. 그의 고민을 들은 지도교수가 책 수선가로서의 일을 배우라고 권했고 그렇게 그 연구실에 취직하여 36개월을 일하면서 최소 1,800권 이상의 책을 수선했다.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다.

    저자는 그동안 수많은 책을 수선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수선된 책을 보며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기뻐하던 첫 번째 의뢰인, 자녀에게 대물림 하고 싶다며 수선을 맡겨온 성경책,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끼시던 책의 수선을 맡은 일 등 사연도 제 각각이고 수선의 이유도 다르지만 책은 영원히 남아 추억을 되살리는 매개체가 된다.

     

    주인공이 된 책을 되살리는 데 기여한 스태프들도 소개된다. 책을 수선할 때 쓰이는 도구들이다. 종이를 접거나 접착제를 붙일 때 많이 사용하는 본폴더, 가위, 칼, 프레스 같은 것들이다. 이런 도구들은 사용자의 체격이나 용도나 작업 습관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베이킹용 주걱이라든지 메이크업용 붓, 스펀지라든지, 심지어 구두닦이, 칫솔, 의료용 붕대까지 원래 용도가 무엇이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가져다 활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손에 익은 도구들과의 팀워크가 책 수선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언제나 모든 책들이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는 희귀서적이라는 긴장감으로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단순한 재화의 가치가 아니라 주인이 그 책을 소유하고 경험한 시간들, 그 속에서 본인과 책만 아는 소리 없는 대화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 깊은 교감과 쌓인 추억들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책은 남아 추억이 되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을 본다. 무거운 책 대신에 스마트폰이나 전용기기에서 책을 읽는 장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장을 넘길 때 사각거리는 종이소리,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냄새, 그 책 안에 특별히 끼워둔 책갈피나 메모지 같은 것들을 보면서 책을 읽었을 때의 내 감정이나 생각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종이책이 너무 좋다. 물론 전자책도 본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시방편이다. 전자책에서 본 좋은 책을 찾아 서점으로 달려간다. 

     

    내게 수선을 해야 할 만큼  헤진 책은 아직 없다. 늘 조심해서 책을 다루는 습관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오래된 옛날 책들은  이사로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버린 탓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들은 모두 동생네로 옮겨 가 버렸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아했던 동화책을 몇 권만이라도 남겨둘걸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중에 원망들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오래오래 보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은 정말 복된 일인 것 같다. 조금 예민하고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라 힘든 일이 분명할텐데 사랑하고 나누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추억은 누구나 소중하고 그 추억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들은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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