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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위대한 그러나, 불행한 소설가

    작가 로맹 가리는 1956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콩쿠르상을 받았다. 그리고 1975년 작가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발표해 콩쿠르상을 받았다. 콩쿠르상은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으로 한 작가에게 한번만 수여한다. 당시 프랑스 문단은 로맹 가리를 퇴물이라고 혹평했고 에밀 아자르는 떠오르는 신예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엄청난 딜레마가 존재한다.

     

    1980122일 로맹 가리는 권총으로 자살 했다. 그의 나이 66세였고 그는 유서에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고 써놓았다. 이 유서는 그가 죽은 후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여기서 에밀 아자르의 정체가 바로 로맹 가리였음이 밝혀진다.

     

    1978년 김만준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노래 모모가 바로 이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꼬마 모모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지금도 가끔씩 TV에서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모모를 흥얼거렸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살고 있다. 로자 아줌마가 돈을 받고 돌보는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어느 날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돈 때문에 자신을 돌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밤새 울었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자신이 아랍인이라는 사실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창녀의 아이들을 돈 받고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가 가족이라고 믿고 살았던 모모에게 생애 최초로 닥친 커다란 슬픔이었다. 로자 아줌마는 가족이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주었지만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 앞에 놓인 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자신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유태인으로 정신적인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고 있고,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의 삶이 있다. 아이들의 엄마는 대부분 창녀들이었고, 성 전환자,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넘쳐난다. 매일 웃고 있는 하밀 할아버지는 육십년 전쯤 젊은 시절에 만나 사랑했던 한 처녀에게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한 할아버지는 늘 웃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불행해 보이기만 한 이들의 삶이 오히려 모모에게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방법과 힘든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모모는 어린 철학자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하밀 할아버지에게 언젠가는 책을 쓸거라고 말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처럼 불쌍한 사람들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쓸 거라고.

     

    그리고 모모는 죽은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하의 유태인 동굴에서 그녀를 지킨다. 사람들이 냄새가 나는 지하실문을 열고 그를 찾아올 때까지 로자 아줌마에게 화장을 해주고 향수로 닦아주면서 함께 한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를 데려간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수 없다.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거라고. 그리고 친절한 의사 라몽 아저씨가 모모의 우산 아르튀르를 찾아준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모모는 이 모든 상황을 딛고 큰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람이야기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더 애잔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워낙 천차만별이라지만 모모의 세상을 다 이해하기엔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과 너무 거리가 멀긴 하다. 그러나 어린 모모가 들려주는 이 모든 이야기가 혼란스럽거나 추하지 않은 것은 마음 따듯한 소년이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로맹 가리가 문단의 편견에 시달렸다니 너무 안타깝다. 엄청난 심적 압박에 시달렸을 로맹 가리는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필명을 바꿔 가며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는 문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열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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