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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지구인 정세랑 작가

    예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희안한 제목의 소설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이기도 했고 뭔가 찐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나도 모르게 책을 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의 제목은 지구에서 한아뿐이다.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고 웹툰 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한마디로 황당했다. 아니다. 당황했었다. “? 진짜 외계인이라고?” 어린 애들이 좋아할 만한 판타지 소설류인가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하게 빠져들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그 외계인을 묘사했던 부분이 떠오른다. 확실한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내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 이미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사랑은 아름다운 거야.’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따듯해졌었다.

     

    그 외계인 이야기를 쓴 작가가 정세랑이었다. 놀랍게도 그 이후 TV드라마로 보건교사 안은영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참 엉뚱하고 발랄하면서 상상력이 기발한 소설가라는 이미지로 정세랑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행에세이다. 사실 이 책도 제목만 봤을 때는 외계인 이야기를 시리즈로 쓴건가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다. 분명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에세이라니 더욱 반가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여행에세이도 즐기기 때문이다.

     

    정세랑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 병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니, 간질이라 불리기도 하는 소아 뇌전증은 유전적인 요인, 사고나 분만 중 뇌손상, 미숙아 등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대부분의 소아 뇌전증은 약물로 치료나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며 더 자세한 것은 의학채널에 찾아보는 것으로 하고.) 작가는 잠들었을 때 부분발작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어릴 때 부모님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 가는 것을 걱정하셨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한다. 낯선 상황에서 발작을 일으킬 수 있고 그러면 위험할 수 있도 있으니 그러셨나보다. 그런 사유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이 작가의 병은 치료 후 다시 재발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재발할 경우 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인 여행기

    책의 홍보 문구에는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정세랑의 첫 번째 여행에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내가 읽은 정세랑 작가의 책은 앞에서 말한 지구에서 한아뿐이란 소설밖에 없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정세랑의 여행에세이가 무엇보다 반가웠다어쩌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친구가 있는 뉴욕으로 향한 것이 2012년의 일이었다. 이 여행 에세이는 그때부터 쓰여진 이야기가 2021년에서야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라기 보다 여행을 기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에세이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첫 여행지는 친구를 만나러 떠난 뉴욕이었다. 혼자서, 친구와 함께, 나중에 합류한 후배와 함께 뉴욕 곳곳을 여행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친구의 여동생의 대학원 동기를 소개받아 그와 사귀게 되고 유럽으로 교환실습을 떠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다시 여행에 나선다. 보수적인 엄마 친구들과 친구 엄마들이 모조리 발칵 뒤집어 졌지만 정작 작가는 여행 책을 쓸거라고 정리한 후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잘츠부르크를 돌며 여행을 하고 도착한 베이스캠프는 아헨. 아헨은 독일의 서쪽 끝에 있는 유서 깊은 소도시다. 유럽의 여행의 장점은 연결된 육로로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도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여행했다.

     

    엄마와 함께 떠난 오사카 여행은 사실 작가의 친구와 친한 엄마의 성화로 이루어졌다. 친구들이 뉴욕으로, 오사카로 떠난 후 상실감에 허전해 하는 딸을 위한 엄마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독일을 함께 갔던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떠난 타이베이 신혼여행이야기, 극장에서 자동 응모된 이벤트에 당첨되어 런던 왕복 비행기 티켓을 받게 되어 런던여행을 떠났던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탈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렇게 다녀온 여행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작가는 덕분에 시간이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쌓여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묘한 여행기가 탄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행으로 채워질 (   )

    작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비록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려 사진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작가의 렌즈를 통해 그가 여행한 곳을 함께 재생할 수 있었다. 작가는 지구 곳곳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하나하나 세심하게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각 여행지마다 비워둔 빈 ( )안에 작가는 어떤 말을 채워 넣었을까? 

     

    이제 조금씩 여행길이 열리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인다. 하지만 여전히 바쁘다. 여행을 생각하고 달력을 넘기다보니 가고 싶은 곳은 온 세상인데 갈 수 있는 날짜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야. 내 안의 나를 살리기 위해 올해는 반드시 떠나야지. 그리고 작가가 남겨둔 빈 괄호 안을 채워 봐야지. 오늘도 여행을 계획하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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