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호우'라 불리는 장맛비 예전처럼 오래 주적주적 내려서 성가시던 장맛비가 아니다. 올여름 집중호우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과 사고들을 남기고 있다. 오죽하면 '극한 호우'라고 불릴까. 가슴아픈 소식들은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뉴스를 보기도 힘들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 장맛비는 언제까지 이렇게 내릴려는지... 우울한 날, 파전에 막걸리 원래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비때문에 습해진 기운으로 꿉꿉하고 끈적거리는 느낌도 싫었고 빗물로 젖은 바짓가랑이가 다리에 감기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비오는 날이면 그래도 반가운 것들이 생겼다. 유난히 빗소리와 함께 땡기는 메뉴, 파전에 막걸리다. 빈대떡에 막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작가가 쓴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다. 문득 공감가는 한 장면에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되새겼다. 물론 이어령 선생과 나의 나이 간격은 크지만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므로 어린시절 비슷한 기억이 있다. 선생이 주로 밤에 꾸는 꿈 세가지에 대해 말한다. 6,25 전쟁이 나서 도망가는 꿈, 신발 잃어버린 꿈 그리고 높은 마루에서 추락하는 꿈이다. 세 가지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그중 신발 잃어버리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고 했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교실에서 늦게까지 있다가 나와보니 교실 밖 신발장에 있어야할 신발이 사라지고 없었다 낡아빠진 짝짝이의 끊어진 신발 하나랑 너덜너덜한 신발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어린 아이가 맨발로 가는 것이 뭐..
오래전 사랑니를 빼고 생긴 구멍이 메꾸어지지 않으면서 바로 옆에 서 있는 어금니에도 문제가 생겼다. 지지대가 없어진 어금니가 그나마 오랜 시간 버텨 주었지만 이제 더이상 견딜 재간이 없게 되었고 그 어금니 치료를 위해 한일극장 건물에 있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1년 넘게 치아상태를 관찰을 해오던, 세심한 원장님은 결국 '발치'를 결정하였고 한가한 토요일 오전, 오랜 세월을 함께한 어금니와 이별을 했다. 그날, 창밖은 흐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였다. 치과의 치료실에서 마주한 통유리로 원도심의 대구가 내려다 보인다. 더 멀리 스카이라인은 높은 아파트들로 둘러쌓였지만 원도심 자리는 좁고 바르지 못한 골목을 끼고,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차있다. 어떤 건물들은 이미 사람이 떠난듯 허물어지기도..
블루베리 스콘 굽기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빵을 구워볼까 하고 냉장고를 뒤졌다. 다행히 약간의 버터와 우유가 있었고 냉동블루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 어느 유튜버의 간단한 블루베리 스콘 만들기 영상에서 옮겨 놓았었던 재료 리스트를 찾아 버벅거리며 따라하기에 나섰다. 요리에는 취미도 없고 재미를 붙여본 적도 없다. 다만 십여년 전쯤 잠시 살았던 뉴질랜드에서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등록한 학교에서 빵 만들기와 커피 내리기를 배웠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학교에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적당한 과정이었고 나름 재미도 있겠다 싶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때가 아니었다면 절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나의 베이킹 경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