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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로 떠난 여행
영화로도 만들어진 ‘살인자의 기억법’을 쓴 작가 김영하는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다. 여러 권의 소설과 산문집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두루 알려져 이제는 대중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와 그의 아내가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그 속에서의 삶을 기록한 여행에세이다. 이 여행 이전에 김영하 작가는 EBS PD의 제안으로 여행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여행지를 정하면서 PD가 어디를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작가는 ‘시칠리아’라고 대답한다.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자신도 모르게 시칠리아라는 지명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때의 고생이후 시칠리아를 좋아하게 된 작가는 일 년 동안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으로 떠나기 전 남은 시간동안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시칠리아에서 한 달 살기
사실 한 달 살기는 요즘 유행하는 말이고 작가는 캐나다로 떠나기 전 남은 두 달 반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시칠리아를 떠올린다. 짧은 기간의 가벼운 여행이 아니고 한곳에 조금 더 길게 살지만 그렇다고 정착민은 아닌 만큼 요즘 여행트렌드인 한 달 살기와 같은 여행이다. 작가가 여행을 떠났던 때는 인터넷도 없고 정보를 쉽게 얻을 수가 없었던 만큼 직접 찾아보고 전화로 확인해야 하는 아날로그 여행시대였다. 시칠리아에 도착하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철도시스템과 역무원들의 무성의한 응대로 인해 많은 곤란을 겪지만 드디어 시칠리아의 리파리섬에 입성하게 된다.
리파리섬에서의 생활은 단순했다. 작가는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발코니에 나가 글을 썼다. 여덟시 반이면 동네의 빵집으로 빵을 사러 나간다. 빵집으로 가는 길에 한집안 형제자매들이 하는 과일가게가 있어 빵과 함께 늘 과일도 사서 돌아오게 된다. 아침은 빵 몇 개와 커피, 과일로 끝내고 다시 일을 하거나 산책을 나간다.
중요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비토리오에마누엘레 거리에는 서점, 슈퍼마켓, 우체국과 은행지점, 카페와 레스토랑, 빵집과 옷가게, 안경점과 교회가 있다. 낮 열두시까지는 대체로 일을 하고 점심을 해먹었다. 주로 파스타나 리소토 같은 음식들이다. 집 바로 앞에 유일한 생선가게가 있는데 항상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팔기 때문에 파스타나 리소토에 넣어 먹으면 별다른 소스 없이도 맛이 있었다.
시칠리아의 와인은 싸고 훌륭하다. 작가는 술은 가능하면 그 지역의 것을 먹는다는 원칙인데 5유로에서 7유로 사이의 와인을 사놓고 식사에 곁들여 마셨다.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는 다섯 시경이 되면 그들도 거리로 나가 사람구경을 하거나 장을 봤다. 그렇게 리파리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되자 서서히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이 되자 그들에게 친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정들었던 리파리를 떠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위해 들른 생선가게의 프란체스코 할아버지, 과일과게 주인 가족은 작가와의 이별을 진심으로 아쉬워한다. 집주인 빌리니씨는 안녕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안녕이라고 하면 안 되지,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한다. 리파리에서 경험한 이 이별은 작가에게 낯선 행복을 선물하였고 다시 리파리를 그리워하게 한다.
작가는 리파리섬을 떠나 시칠리아의 여러 곳을 여행한다. 그는 애초에 요새로 설계된 도시 타오르미나를 메두사의 바다, 대부의 땅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화에서 아테네여신의 저주를 받은 메두사를 만나는 사람은 돌로 변해버린다. 타오르미나에는 사방이 기암절벽이고 아름다운 것들은 돌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바다를 사랑한 이곳 사람들은 메두사를 시칠리아의 상징으로 삼았다. 또한 이곳은 영화 대부의 시칠리아 부분의 촬영지가 있어 말런 브랜도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들이 기념품 가게 어디에나 걸려 있다. 그리고 노토와 아그리젠토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며 시칠리아에서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공유해 주고 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여행에서 식도락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작가는 시칠리아에서 직접 요리를 하고 그 기록을 남긴다. 모국의 음식이나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시칠리아 같은 지역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살아가자면 기본적인 생존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중해식 생존요리법이라는 소제목으로 그곳의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오징어 스파게티, 봉골레 스파게티 등의 레시피를 공유한다. 또 동서양 절충식의 볶음밥을 해먹다가 리소토에도 도전한다. 그리고 지중해식 해물리소토, 홍합리소토에 대해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1693년 에트나 화산 폭발과 그 여파로 이어진 대지진이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몰타를 강타했다. 마흔다섯 개의 도시와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6만 여명이 목숨을 잃는 엄청난 대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재건된 시라쿠사, 라구사 모디카 등 시칠리아 남동쪽의 도시들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지진 바로크’라고 불린다.
작가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대지진과 같은 재앙에서 비롯된 죽음이 내일 당장 닥쳐올지도 모르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금 현재를 즐겨라.'라고 요약하면 될까.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우리에게 죽음의 정해진 시기는 없다.
화산폭발과 대지진으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있는 시칠리아를 김영하 작가와 함께 여행하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뚫리는 듯하다. 창밖에는 이미 봄이 왔다. 따듯한 공기를 마셔봐야겠다. 비록 마스크가 내 숨을 일부 제한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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