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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해외출장이 가끔 있었지만 내게 유럽 출장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내게 유럽은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기에 6~7년 전 드디어 휴가를 얻어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들어가 파리 드골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유럽에 첫 입성을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 큰 도시들로 짜인 일정을 즐겼고 나에게 유럽은 큰 도시로만 연결되어 있다.
유럽 여행의 기준을 바꿔라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진짜 유럽은 시골에 있다고. 그에게 대도시는 시골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며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들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오롯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정서와 문화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시골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학교 농경제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으로 먹고 마시는 산업, 즉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산업에 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 셰프 겸 푸드라이터인 장준우셰프가 함께 동행하며 사진을 찍고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지식을 더해 주었다.
문정훈교수의 논리에 따르자면 지금까지의 내 유럽여행은 엉터리였나?
먹고 마시는 프랑스 시골마을 유랑기
이 책은 프랑스의 시골을 크게 부르고뉴와 프로방스 지역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문교수는 프랑스에서 파리가 가장 덜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프랑스의 아름다움은 시골에 있기 때문이란다. 파리에 도착하여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으면 얼른 시골 마을로 나가 진짜 프랑스를 느껴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특히, 7월초 프랑스 시골 곳곳에는 와인 양조를 위해 심어놓은 포도들이 성장하고 있는 시기로 어디를 가도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포도밭을 흔히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떼루아. 포도밭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 시골의 흙과 태양과 바람이 포도와 만나 질좋은 와인을 만들어 낸다. 프랑스 시골에서 떼루아에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부르고뉴라고 한다.
부르고뉴에서 음식의 소스에 들어가는 버터와 크림이 참기름과 들기름의 역할을 한다면 간장 역할을 하는 식재료는 이 지역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부르고뉴식 소고기 요리인 ‘뵈프 부르기뇽’과 와인에 빠진 수탉이라는 의미의 ‘코코뱅’에 들어가는 소스가 바로 와인이다. 부르고뉴에서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양조장보다 포도농사를 짓는 농가라고 한다. 농부가 흙과 함께 사는 시골집이란다.
부르고뉴 사람들은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듯 포도밭에도 이름을 붙여 구분하고 특히 1등급(Grand cru)밭과 2등급(Premier cru)밭에서 나온 포도는 다른 밭의 포도와 결코 섞이는 일이 없다. 이들의 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집념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여러 와이너리에서 여러 종류의 와인을 소개했지만 부르고뉴의 루비라고 불리는 피노 누아가 내겐 가장 인상적이다. 1등급 밭에서 생산한 피노 누아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 몇 병이면 서울 시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와인의 엄청난 가치를 말해준다. 그 맛은 어떨까. 너무나 궁금하다.
여기서 상식 한 가지!
부르고뉴의 등급제와 달리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의 등급제는 와이너리를 기준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정부가 평가한 등급이 아니라 와인 유통업자들인 네고시앙이 매입하는 보르도지방의 와이너리의 와인 가격을 기준으로 선정한 방식으로 그대로 정부 공인이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안에서도 다른 등급제의 적용을 받는데 결국 중요한 점은 부르고뉴는 땅의 특성인 떼루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보르도는 와인제조 기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론강 남부로 이어지는 프로방스는 꽃과 허브의 천국이다. 프로방스의 발랑솔 마을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라벤더를 재배하고 있으며 77월 초에 라벤더 축제가 시작된다. 7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라벤더 시즌에는 보라색 들판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부르고뉴 지방의 음식에 버터와 크림이 있다면 프로방스에서는 올리브 오일과 식초가 그 역할을 한다. 또 프로방스에는 로제와인이 유명하다. 장밋빛이 도는 로제와인은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프로방스의 샤토 미라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 로제와인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간 여행을 기다림
와인을 잘 알지도, 프랑스 음식을 자주 접하지도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마음껏 돌아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여행을 하게 된다면 관광객이 줄 서서 사진 찍는 명소가 아니라 그 지방 사람들의 삶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로 들어가 문교수와 장셰프처럼 여행하고 싶다. 진정한 여행은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이 가능한 장소에서 서로 소통하며 이해하고 이를 통한 더 깊은 사색으로 나를 키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시간도 돈도 부족하지만 내일은 더 좋은 일 생길 것이란 기대와 함께 더 멋진 여행의 날을 꿈꾼다. 비록 지금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도 답답한 시기에 많은 위로가 된다.
프랑스로 여행 갈 때 꼭 필요한 ETIAS에 대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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