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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제국과의 악연으로 시작된 근대에서 여전히 풀지 못한 양 국간의 숙제가 남아있는 현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역사를 이어온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많은 애국지사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도 그중의 한 분이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 독립을 알리다.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서영해 선생을 만났다. 우연한 기회에 소개받고 알게 된 정상천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분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만나게 된 책이다. 정상천 작가도 파리에서 공부하여 프랑스어로 된 책들을 번역하기도 한 터라 파리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서영해선생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엔 소설인가 했다.
'서영해'
오랜 세월 역사를 배우고 특히 우리나라 독립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접해 왔지만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이름이다. 정상천 작가가 이전에 쓴 책에서 파리에서 활동한 서영해 선생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었고 작가의 지인에게 전달된 책을 통해 서영해 선생의 친척과 연락이 닿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언론가, 문필가, 외교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 부산 초량에서 태어나 17세에 3.1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가 임정의 도움을 받아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당시 부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부친의 도움이 컸으나 유학 도중 부친이 별세하자 갖은 고생을 하며 프랑스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선생은 1929년 임시정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여 유럽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과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서영해 선생이 조선 독립을 위해 27년간 고군분투했지만 정부수립 이후 상해로 건너가 행방불명이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이승만박사가 아니라 김구선생을 추종한데서 오는 역사의 외면과 그에 따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후손들의 노력으로 다행히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서영해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어려운 유학생활과 고려통신사를 통한 독립활동을 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온 '엘리자'라는 여인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당시로선 매우 늦은 35세의 나이에 그녀를 만났다. 임신한 엘리자는 출산을 위해 고향인 빈으로 돌아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 시기에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독일에 합병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적국이 된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서영해는 독일군의 파리점령으로 6개월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이후 파리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면서 엘리자와 연락할 수 없게 된다. 엘리자는 연락없는 서영해와 일방적으로 이혼하고 중국출신의 의사와 재혼한다. 서영해의 첫 번째 결혼은 그렇게 마감된다.
여기서 한가지.
이승만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오스트리아 출신. 한때 이승만과 서영해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서영해가 정치 이념을 달리하는 김구선생을 추종하게 되면서 역사에서 그에 대한 기록이 전무후무한 것도 그 영향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귀국한 서영해는 자신보다 스무살 어린 신여성 황순조 여사와 결혼한다. 이들의 결혼생활 또한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고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결별하게 된 후 서영해선생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김구선생의 노선에 따라 통일정부 수립 활동을 위해 그의 아내와 파리로 떠나기로 계획하고 중국 상해로 떠났으나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 국적을 소유한 서영해는 한국 귀국선을 탈 수 없게 되었다. 이후 황순조여사는 평생을 교단에서 생활하며 남편을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서영해 선생에 대한 기록이 없는 만큼 그의 최후를 확인할 길이 없다.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는 설로 인해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하고 상해에서 사망했다는 설도 있지만 모두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위한 기록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수많은 아픈 기록들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의 기록들은 늘 가슴이 아프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문제 등은 한일 양국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역사와 그 전쟁에서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전범 색출과 처벌을 게을리 하지 않는 독일과 비교하면일본은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자기 기만적인 역사인식을 당연시하고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해 나가고 있어 화가 날 뿐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해방후 귀국한 서영해선생이 본 조선사회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세력들이 아무일 없었던 듯 설치며 기득권을 가졌고 이승만 정권은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이후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과 불합리한 체계들이 고착화되어 버렸고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그들은 부끄럼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서영해선생 또한 그런 역사의 희생양이다. 결국 상해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서영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은 해방 이후 그들만의 리그의 또 다른 양상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너무도 생소한 이름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내고 정리한 정상천 작가의 노고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앞으로 이러한 기록들이 잘 보전되어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선조들이 안타깝게 묻히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역사는 기록되어지는 것이고 보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바르게, 정의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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