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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꾸준히 탐독하고 있다. 한 작가에게 관심이 쏠리면 꾸준히 그의 작품을 따라가며 읽는 것이 나의 독서 스타일이다. 절대 배신당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정교하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스토리라인을 따라 가야한다. 사실은 어렵다.
줄리언 반스를 만나다
줄리언 반스는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경험을 축적하고 또 철저하게 계산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하는 작가다. 소설 뿐 아니라 비소설 분야의 책들까지 그의 책을 읽고 나면 경외심이 든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나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반스 작품을 정주행 하는 중에 만난 신세계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발굴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의 세계를 뒤흔드는 느낌이다. 마치 이것이 진실인 것처럼 나의 정상적인 지식이 흔들린다. 이제 그 얘기를 나누어보자.
거꾸로 다시 쓴 이야기들, 장편 같은 단편
이 소설은 단편인데 장편같이 나무좀벌레나 노아의 방주 같은 모티브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연결되어있다. 첫 장은 노아의 방주라는 태초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장은 꿈속에 천국으로 가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성서나 세계사의 이야기들을 거꾸로 뒤집어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꾸몄다고 표현하면 엇비슷할까. 성서나 세계사라고 하기엔 작가의 시각이 너무 깊숙이 관여되어 있고 단순히 소설이라 하기엔 실제 사건이 배경이 되어 뒤섞여 있다. 어찌되었건 역사도 누군가가 구전과 기록을 반복하며 꾸며진 부분이 허다할지니 줄리언 반스가 기록한 역사이야기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즐기면 되겠다. 힘들게 읽은 만큼 많은 생각을 수반하는 소설이다. 기억에 남는 몇 편을 통해 줄리언 반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공유한다.
제1장 밀항자는 기발한 시각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노아의 방주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심판을 위해 오직 바르게 살았던 노아 일가를 살리고자 신이 게시를 내려 방주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가족과 동물들까지 실어서 홍수를 피해 살아남게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던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는 이 성스러운 이야기를 교묘하게 비틀었다. 더구나 방주에 몰래 숨어든 나무좀벌레의 시각으로 노아와 그의 일가, 방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술한다. 반스가 종교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 대목이다. 어쨌든 소설은 소설이니까. 방주 안은 작은 인간 세상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간간의 관계를 방주 안에 타고 있는 모든 동물(인간을 포함)을 통해 표현한다.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은혜 입은 동물들조차 결국은 원래의 타락한 세계의 모든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인간 본성이 그러한 걸까. 머리와 가슴이 써늘해지는 느낌으로 이 장을 읽었다. 참고로 나는 종교가 없다.
몇 년 전 루브르박물관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만난 많은 작품들 중에서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작품을 기억한다. 한참을 다니다가 다리도 아프고 지칠 무렵 너무나 사실적이고 거대한 작품에 놀라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절망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 사람, 그 와중에 수건을 흔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뒤엉켜진 충격적인 모습은 오래도록 생생하게 남아있다. 제5장 난파에서는 노아의 방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건강한 자, 병약한 자로 나누고 결국 살아남은 자와 버려진 자들로 나누어진다. 냉혹한 현실과 그 안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서술하여 인간세계의 복잡다단한 관계들을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역사적인 사실과 그 역사에서 유추되고 상상된 10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흑백의 논리에 쌓여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을 작가의 지식에 기반하여 논리적이면서 정돈된 한편의 소설로 만들어진다. 8장과 9장 사이에 있는 삽입장은 사랑에 대한 에세이형식의 글이다. 반스의 글을 다 이해하기엔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그저 흐름을 따르다가 인상깊은 문장이 나오면 한 번 더 돌아보는 정도에서 흘러가야만 한다.
소설이라는 신세계
한창 건방지던 시절에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생각했었다. 물론 학교에서 권하는 추천도서 목록까지 무시한 건 아니지만, 어른이 되고 돈벌이를 하면서 자기계발 도서나 업무와 연관된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 위주로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우리 삶이다. 영화 같은 미디어와 함께 우리의 삶을 축소한 큰 장으로서 다양한 독서를 권하고 싶다. 특히 나와 같이 건방진 생각으로 소설을 멀리한 사람이라면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 딱이다. 풍부한 지식이 기반이 된 그의 세심한 글을 읽다보면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작품 속에 스며든 느낌이 든다. 10과 1/2장으로 쓴 세계역사도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충격이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누구도 생각 못한 경이로운 창작의 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줄리언 반스의 작품세계를 좀 더 따라가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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