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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영당서점

    오래전 사랑니를 빼고 생긴 구멍이 메꾸어지지 않으면서 바로 옆에 서 있는 어금니에도 문제가 생겼다. 

    지지대가 없어진 어금니가 그나마 오랜 시간 버텨 주었지만 이제 더이상 견딜 재간이 없게 되었고

    그 어금니 치료를 위해 한일극장 건물에 있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1년 넘게 치아상태를 관찰을 해오던, 세심한 원장님은 결국 '발치'를 결정하였고

    한가한 토요일 오전, 오랜 세월을 함께한 어금니와 이별을 했다.

     

     

    그날, 창밖은 흐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였다.

    치과의 치료실에서 마주한 통유리로 원도심의 대구가 내려다 보인다.

    더 멀리 스카이라인은 높은 아파트들로 둘러쌓였지만 원도심 자리는 

    좁고 바르지 못한 골목을 끼고,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차있다.

    어떤 건물들은 이미 사람이 떠난듯 허물어지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건물 옥탑방에는 누군가 살고 있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운동기구, 생활용품들이 보인다.

     

    발치를 위해 마취를 하고 대기하면서 창밖을 즐기다 문득,

    한 건물 외벽에 쓰여진 글자를 발견했다.

    "본영당 서점"

    마취된 입가로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대구 중앙로의 서점골목들은

    저마다의 추억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본영당서점, 학원서림, 청운서림, 제일서적 등등.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그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 장소로 서점을 주로 이용했었다.

    기다리면서 책을 둘러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동아백화점 정문, 대구백화점 남문' 같은 곳은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했으므로 내겐 서점이 더 좋은 곳이었다.

     

    지금 대구에 본영당서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대구 최초의 서점으로 1945년 들어선 본영당서점은 중앙로를 서점거리로 이끄는데 

    일조한 곳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이제 대구도 교보서적이나 종로서적 같은 거대자본들이 점령하였다.

     

    세월이 흐르며 나도 변하고 도시도 변했다.

    그리움 이름들을 살며시 불러보지만 이제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들도

    나처럼 변하여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어금니 하나를 잃어 버린 날,

    상실에서 비롯한 허전함이 나를 사로잡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내 젊은 시절을 되새기며

    다시 따듯해지는 가슴을 얻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거야' 

    그 시절, 우리와 늘 함께한 이문세의 노래가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그리운 얼굴들을 따듯한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리라 믿는다.

    사람이 변하듯 도시도 그렇게 세월 따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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