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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난 더글라스 케네디

    오랜만에 더글라스 케네디를 다시 만났다. 한동안 그의 소설에 빠져 정주행을 했었다. '빅 픽처', '오로르', '고 온', '데드 하트', '픽업' 등 도서관에 있는 그의 소설은 모두 빌려 읽었다. 도대체 이 무궁무진하게 샘솟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신기해하면서. 코로나19로 늘어난 저녁과 주말 동안 그의 소설이 무료한 나의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었었다. 그리고 한동안 뜸했었다. 최근에는 소설보다 비소설을 많이 읽었고 다양하게 관심가는 책들을 읽다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나보다. 그러다 다시 그의 책을 발견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을 더 사랑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미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특히 유럽에서 더 인기있는 작가로 프랑스문화원으로부터 문화공로훈장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 빠지만 헤어나기 쉽지 않다.

     

    빛을 두려워하는 Afraid of the Light

    이 소설의 화자인 브렌던은 우버 운전자이다. 27년 동안 전기회사의 영업직으로 이사자리에까지 오르지만 회사의 매출감소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결국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7년 된 자신의 차 프리우스를 타고 우버 운전자로 살아가고 있다. 소설의 첫머리는 우버 운전자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 임금 구조, 고객 응대에서 오는 각종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러한 쉽지 않은 근무환경에서 그는 가족을 생각하고 앞날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감수하는 인내심 많은 인물이다.

     

    어느 날 은퇴하고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교수 엘리스를 손님으로 만나게 된다. 엘리스를 어느 병원앞에 내려준 그는 담배를 피우며 다른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엘리스가 들어간 병원 안에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목격한다. 병원에는 화재가 발생하고 브렌던은 엘리스를 구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임신중절 여성들을 돕는 단체에서 일하는 엘리스와 우버 운전자 브렌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날 이후로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을 병원으로 태우고 갈 때 엘리스는 브렌던을 호출하게 된다. 브렌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단체의 일원처럼 알려지게 된다.

     

    사실 브렌던의 부인인 아그네스카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 단체는 브렌던의 어릴 적 친구인 토더 신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의 최고 자산가인 켈러허의 후원을 받고 있다. 브렌던와 아그네스카 부부는 첫아들을 유아급사증후군으로 잃은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후 딸 클라라를 얻는다. 클라라는 학교를 졸업하고 학대받는 여성들을 돕는 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임신중절 옹호론자이다. 딸이 태어난 이후에도 부부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보다 서로 대화가 되는 아빠를 더 좋아한다. 브렌던은 이런 상황도 모두 받아들이고 아내가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에 대해서도 적절히 거리를 두며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엘리스와 브렌던은 큰 사건에 휘말린다. 지역의 권력자인 켈러허가 미성년자를 감금하고 성폭행했고 심지어 임신까지 시킨 것이다. 피해자인 앰버는 쇼핑중 감시망을 피해 몰래 도망쳐 클라라에게 연락한다. 그리고 클라라는 앰버를 돕기 위해 도주를 시작하고 아빠인 브렌던을 통해 엘리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이 좋겠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겠다.

     

    다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 이 소설에는 묵묵히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는 브렌던과 그의 가족, 은퇴이후 봉사활동에 헌신하는 엘리스, 성직자이면서 임신 중절 반대운동으로 자신의 명성을 쌓기에 바쁜 토더 신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켈러허 같은 부류의 인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민낯을 공개한다

     

    작가의 덕목 

    작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신이 이용한 우버 운전자가 정리해고 된 쉰일곱의 남자가 이 경제 체제에서 갈곳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한 말을 듣고 소설 속 등장인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즈음 친구로부터 아들 가족을 사고로 잃은 자신의 이모가 종교에 열중하게 된 후 임신중절 반대운동에 열성적으로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렇게 이 이야기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책을 들자마자 끝까지 쉼 없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는 이런 사람인가보다. 주변의 이야기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연결고리를 만들어 실로 뜨게질을 하듯 이어나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가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 주변의 일상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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